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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역사5

제주 - 수난의 역사 탐라(제주) 그 비운의 역사(고려말 ~ 현재) 고려가 멸망한 후 이태조는 적지 않은 정적들을 제주로 유배시켰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제주도 유배의 역사는 끊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제주도는 유배지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거나 염증을 느낀 전직 관리들과 선비들이 입도 영주한 곳이 바로 제주다. 조선조에 와서 제주의 수난은 더욱 거세졌다. 정치적으로 백제 신라 고려에 예속되면서도 반독립국의 형태를 유지했던 제주가 조선왕조에 접어들어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의 일환으로 “일개군현”으로 전락했다. “태조는 제주도에 대해서 적극적인 내지화 정책을 폈으며 파견되는 관원의 권한도 강화되었다. 출륙금지 출륙금지는 제주민들이 당한 수난의 최고봉이다. 인조 7년 1629년부터 순조 말 .. 2019. 12. 30.
고대 제주의 역사 고대 제주의 역사 수난의 땅 제주에 대한 기록은 참으로 오랜 역사로 거슬러 올라 간다. 중국 진나라의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 가운데 동이전 한조 끝에 “마한 서쪽의 끝에 바다에 큰 섬이 있는데 주호가 있다. 옷은 가죽옷을 입고 소나 돼지를 즐겨 친다. 배를 타고 한중을 왕래하며 장사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 주호는 제주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제주에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존재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삼국유사에서도 제주에 관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신라27대 선덕여왕은 덕이 있으나 위엄이 없어 주변 나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 것으로 인해 고민하다 불력에 의해 이들 세력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황룡사에 9층탑을 세웠다. 이 탑 1층에는 왜, 2층은 진,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 5층은 응유.. 2019. 12. 28.
제주역사 : 고려시대 탐라 탐라는 고려시대에 속국의 형태를 넘어 고려의 한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것으 힘이 세진 고려의 강력한 국력에 의해 피할 수 없는 절차였다. 925년(태조8년) 탐라는 고려 태조의 세력이 강해지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고 그러부터 11년 후인 936년(태조19년) 12월에 태자 고말로를 입조시켰다. 제주 탐라는 침략과 정벌을 피하기 위해 고려와 긴밀한 관계를 자청한 것이다. 고려는 958년에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도를 실시하고 인재를 양성할 때 탐라인에게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결과 977년 3월에 진사시 갑과에 고응 등 3인과 을과에 3인이 급제하였다. 탐라와 고려의 긴밀한 유대관계 탐라와 고려는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였다. 태조는 종래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고자견을 성주로 양.. 2019. 12. 19.
제주역사 : 삼별초와 탐라 학정과 수탈이 계속되었으면서도 탐라인들은 나라사랑과 공명심을 잃지 않았다. 사회정의 정신은 탐라인의 성품을 가름하는 중요한 특징이었다. 삼별초는 탐라인의 이 같은 사회정의 정신과 잘 어울렸다. 삼별초는 본래 개인적인 보호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제주와 말 고려시대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권신들은 자신들의 신변 보호와 사회적 질서 안정을 위해 힘세고 용감한 자를 특별히 골라 야간 경비를 서게 하였다. 이들을 야별초라 불렸다. 야별초는 정권 유지에 해가 되는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이용하기 위한 목적도 농후했다. 1170년 무신 정중부의 난 이후 무신들 간의 정변이 반복되면서 사회적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 처음 최충한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된 야별초는 그으 아들 최우에 와서 세력이 커지면서 야별초를 .. 2019.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