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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57

제주 목관아(사적 제380호)와 관덕정(보물 제322호) 제주 바다를 앞에두고 동문로타리에서 서문로타리 중간에는 조신 시대의 제주 목관아가 위치하고 있다. 이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최고 통치 기관이며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행정 기관이다. 최초의 관아는 모두 불타서 소실 되었고 터만 남아 있다가 1991년 부터 발굴 조사와 복원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아지는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1434년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타없어졌지만 안무사 최해산이 바로 재건하였다. 제주 목사의 집무실이었던 홍화각을 비롯해 집성실인 연희각 연희장으로 쓰였던 우연당, 귤림당등의 건물과 부대 시설이 복원 되었다. 목관아에서 직접 제배한 귤이 한양에까지 갔다고 하니 당시 제주 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06년.. 2024. 7. 2.
4.3 사건과 제주 교회의 첫 순교자 이도종 목사 1945년 해방이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좌우의 이념적 대립은 사회를 극도로 혼란 스럽게 만들었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선거를 앞둔 4월 3일에 제주도에서는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확산되었고 제주도에는 비상경비사령부가 설치되어 진압 및 소탕작전이 이루어졌다. 전쟁과 맞물린 이 사건은 6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제주도민은 피해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고 말았다. 제주 교회가 입은 피해도 사뭇 심각했는데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출신 1호 목사인 이도종 목사가 순교하고 교인들이 실종 및 희생당하였으며 서귀포, 협재, 삼양, 조수교회가 소실되고 교회 사택 및 교인 가옥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조남수 목사가 쓴 의 기록에 의하면 조목사는 .. 2024. 6. 25.
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목사 3 삼양교회는 1915년 10월 1일 이기풍 선교사의 전도로 제주시 삼양2동 신평석 씨 댁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듬해 오주병 교우가 초가 3칸을 예배당으로 헌납하였으며 1918년 김창국 목사가 처음으로 부임하여 1922년에 삼양2동 초가 35평의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2년후에 김정복 목사가 부임하였다. 신학교를 휴학한 이도종이 삼양교회 전도사로 부임할 때에는 교역자가 없었던 때였다. 이도종을 열심을 다하여 2년간 200여명의 교우들이 있었던 삼양교회를 섬기며 헌신 하였다. 1926년 신학교로 다시 돌아온 이도종은 졸업을 한학기 남기고 윤식명 목사의 추천으로 김제 서쪽의 월성과 봉월 두 교회를 섬기게 된다. 월성과 봉월은 제주 삼양교회와 달리 교세가 매우 약할 뿐만 아니라 동학난의 영향으로 .. 2024. 6. 22.
제주 선교의 첫 열매 홍순흥 장로 이기풍 목사와 홍순흥 장로의 첫 만남은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홍순흥 장로는 이기풍 목사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무엇하러 오신 분이십니까” 그러자 이기풍 목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신약, 구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에 홍순흥 장로는 이렇게 화답한다. “아 약장사시군요 어디다 쓰는 약입니까? 이 우스꽝 스러운 만남이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열매를 맺는 순간이 될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제주는 예로부터 바람, 물, 가뭄으로 오는 재해가 크다고 하여 삼재라 하였고 대문, 도둑, 거지가 없다하여 삼무, 그리고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하여 삼다라고 하였다. 특히 제주사람들은 서로가 삼춘이라고 부르면서 혈연공동체를 이루는 삶을 살았고 그와 더불어 마을 마다 있는 당을 통해 그들만의.. 2024.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