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본문 바로가기

Welcome207

제주 기독교 순례길 5코스 제주 성내교회 제주 성내교회는 제주의 첫 공교회이며 이기풍 목사에 의해 1908년 설립된 교회이다. 1908년 2월 제주 산지포에 도착한 이기풍은 이미 제주에서 기도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김재원 조봉호등을 만나 제주 최초의 교회인 성내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홍순흥 김행권 등을 전도하여 향교골 중인문 근처에 있는 김행권의 집에서 기도모임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후 1910년 유배중인 박용효대감의 도움으로 삼도리에 있는 옛출신청사(훈련원)을 매입하여 예배를 드렸다. 1915년 조선총독부에 교회 성립 신고를 하고 1917년 김재원 홍순흥을 제주도 최초의 장로로 세움으로써 당회가 구성되어 조직교회가 되었다. 이후 교회의 부흥으로 1923년 반 양옥식으로 교회를 신축하였다. 이후 성내교회는 1941년 "동부.. 2024. 7. 4.
제주 목관아(사적 제380호)와 관덕정(보물 제322호) 제주 바다를 앞에두고 동문로타리에서 서문로타리 중간에는 조신 시대의 제주 목관아가 위치하고 있다. 이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최고 통치 기관이며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행정 기관이다. 최초의 관아는 모두 불타서 소실 되었고 터만 남아 있다가 1991년 부터 발굴 조사와 복원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아지는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1434년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타없어졌지만 안무사 최해산이 바로 재건하였다. 제주 목사의 집무실이었던 홍화각을 비롯해 집성실인 연희각 연희장으로 쓰였던 우연당, 귤림당등의 건물과 부대 시설이 복원 되었다. 목관아에서 직접 제배한 귤이 한양에까지 갔다고 하니 당시 제주 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06년.. 2024. 7. 2.
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2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만세운동은 제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천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나며 조국 광복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구체적인 행동의 시작이 바로 ‘독립희생회’이다. 이곳을 통해 독립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이 모금 운동에는 윤식명 목사 임정찬 목사 등 당시 제주에서 목회하던 3명의 목사가 모두 기꺼이 마음을 합하여 동참하게 되고 이도종과 최정식 김창언 문창래 등의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희생회 제주지회를 결성하여 모금활동을 비밀리에 진행하게 된다. 독립희생회는 4450명의 회원을 갖게 되었고 군자금도 1만원에 달하였다. 이 군자금은 김창류를 통해 상해로 무사히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일은 일본 경찰에 의해 발각되었다. 조봉호를 비롯한 윤식명 김창.. 2024. 6. 28.
학부모 이야기 1 어쩌다 학부모 김성중 교수 ‘학부모’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모’라는 단어 보다는 웬지 더 무게감이 있는 단어로 들린다. 어쩌다 학부로라는 책을 쓴 김성중 교수에 의하면 학부모를 이렇게 정의 한다. 첫째 학부모는 학생의 부로라는 뜻이다. 둘째 학부모는 자녀의 학업에 책임을 다하는 부모라는 뜻이다. 셋째 학부모는 배우는 부모라는 뜻이다. 나는 세번째 정의가 마음에 든다. 그렇게 학부모도 학부모가 처음이기에 배워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기독학부모의 경우 예수님에 대해서도 잘 배우고 자녀의 학업도 잘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 입시가 최대 목표인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 가운데 자녀의 학업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녀의 신앙도 포기할 수 없다. 신앙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없을까? 늘 기독학부모들.. 2024.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