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를 앞에두고 동문로타리에서 서문로타리 중간에는 조신 시대의 제주 목관아가 위치하고 있다. 이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최고 통치 기관이며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행정 기관이다. 최초의 관아는 모두 불타서 소실 되었고 터만 남아 있다가 1991년 부터 발굴 조사와 복원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아지는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1434년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타없어졌지만 안무사 최해산이 바로 재건하였다. 제주 목사의 집무실이었던 홍화각을 비롯해 집성실인 연희각 연희장으로 쓰였던 우연당, 귤림당등의 건물과 부대 시설이 복원 되었다. 목관아에서 직접 제배한 귤이 한양에까지 갔다고 하니 당시 제주 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06년에는 누각 망경루가 복원 되었다. 망경루는 제주로 발령받은 관리들이 서울의 부름을 기다리며 망루에 올라 북쪽 하늘을 바라본데서 기원한 것이다. 조천에 있는 연북정을 떠올리게 한다.
제주 목사는 지금의 도지사와 같다. 그러나 제주 목사로 부임 받은 사람들을 그 직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도 그럴것이 제주는 유배지중 하나였고 가족들은 제주로 가는 것을 두려워 하였다. 또한 제주까지 오는 길에 제주에 발도 딛지 못하고 배가 파선한 경우도 있었다. 제주에 산다는 것 자체가 절망이었고 제주 섬이 얼마나 척박하고 험난했던 곳인지 제주 목사의 부임만 보더라도 짐작이 간다.
이곳은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꼭 들려봐야 하는 곳이다.
제주 목관아 입구에 있는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중 하나로 보물로 지정된 건물이다. 관덕정은 1448년 제주 목사 신숙청이 사졸들을 훈련시키고 상무 정신을 함양할 목적으로 세웠다. 대들보에는 <십장생도>, <적벽대첩도>, <대수렵도>, <상산사호>, <진중서성탄금도>, <진중서성탄금도등>의 격조 높은 벽화가 그려져 있어 조선 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
관덕정의 편액은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의 글씨이다. 그래서 사적 가치가 더 높은 곳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내 천정의 ‘탐라형상’ 과 ‘호남제일정’은 방어사 김승록 박선양의 편액이다.
관덕정은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24년에 마에다 요시지가 보수를 한다고 중수하며 만행을 저질렀다. 관덕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긴 처마를 절단해 버렸다. 그래서 관덕정의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말았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69년에 다시 복원된 건물이다.
관덕이라는 이름은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것이다”라는 <예기>의 내용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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