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내교회
제주 성내교회는 제주의 첫 공교회이며 이기풍 목사에 의해 1908년 설립된 교회이다. 1908년 2월 제주 산지포에 도착한 이기풍은 이미 제주에서 기도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김재원 조봉호등을 만나 제주 최초의 교회인 성내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홍순흥 김행권 등을 전도하여 향교골 중인문 근처에 있는 김행권의 집에서 기도모임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후 1910년 유배중인 박용효대감의 도움으로 삼도리에 있는 옛출신청사(훈련원)을 매입하여 예배를 드렸다.
1915년 조선총독부에 교회 성립 신고를 하고 1917년 김재원 홍순흥을 제주도 최초의 장로로 세움으로써 당회가 구성되어 조직교회가 되었다.
이후 교회의 부흥으로 1923년 반 양옥식으로 교회를 신축하였다. 이후 성내교회는 1941년 "동부교회"와 "서부교회"로 나누어지며 부흥의 길을 걸었다. 1953년 장로교회의 전국적인 분열로 서부교회도 기장(조선파)과 예장(장신파)으로 분열되었다.
이후 1973년 예장 "서부교회"는 "중부교회"와 연합하여 성안교회로 개명하였다.
1974년 기장 서부교회는 제주시 관덕로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1976년 헌당예배를 드렸다. 이후 서부교회는 1994년 이름을 성내교회로 바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4년 기장 총회에서는 제주 성내교회를 '역사 유적지 교회'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지금 성내교회에서는 1917년 제주교회 첫 당회록과 1927년 이기풍 목사가 사용했던 강대상이 보존되어 있다.
관덕정 제주목관아
관덕정은 제주시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사적지로 1448년(세종30년) 안무사 신축성이 세웠다. '관덕'이란 이름은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것이다라는 '예기'의 내용에서 가져왔다. 관덕정은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검열하는 곳이었으며 관민이 함께 공사를 의논하거나 잔치를 베푸는 곳이기도 했다. 일제 감정기 동안에는 지붕처마가 부서지는 듯 변형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해방 후 관덕정은 제주도의 임시도청으로 1952년도에는 도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는 등 순탄치 못한 역정을 견뎌왔다. 1963년 보물 제332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주영락교회 첫 예배터
영락교회는 1945년 공산주의를 피해 내려온 27명의 성도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창립한 교회이다. 제주영락교회는 한국전쟁 때 피난으로 제주에 들어온 서울영락교회 교인들이 모여 1951년 12월 31일 교회 설립을 결의하였고1952년 1월 6일 제주시내 평양옥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이후 교회의 급속적인 성장으로 일도리에 성전을 새로 지었지만 교인들이 계속 증가하여 교회를 현재 정안아파트자리로 옮겼었다. 당시 제주도에서 가장 큰 석조건물로 주목받았다. 이후 영락교회는 지속적으로 부흥 성장하여 일도2동 현재의 교회로 확장 이전 하였다.
이기풍 목사의 기착지 산지포구
한국 장로교 최초로 배출된 7명의 목사 중 한 사람인 이기풍 목사는 1908년 2월 제주의 산지포구로 들어왔다. 당시 제주포구는 제주와 육지그이 문물이 오고가던 교통의 요지로 활발한 교역활동이 이루어진 곳이다. 제주에 오기전 이기풍 목사가 탄 배는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 표류하였다. 어부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다시 제주로 오게 되었다. 제주에온 이기풍 목사는 칠성통에 거처를 마련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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