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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기독교역사5

4.3 사건과 제주 교회의 첫 순교자 이도종 목사 1945년 해방이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좌우의 이념적 대립은 사회를 극도로 혼란 스럽게 만들었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선거를 앞둔 4월 3일에 제주도에서는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확산되었고 제주도에는 비상경비사령부가 설치되어 진압 및 소탕작전이 이루어졌다. 전쟁과 맞물린 이 사건은 6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제주도민은 피해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고 말았다. 제주 교회가 입은 피해도 사뭇 심각했는데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출신 1호 목사인 이도종 목사가 순교하고 교인들이 실종 및 희생당하였으며 서귀포, 협재, 삼양, 조수교회가 소실되고 교회 사택 및 교인 가옥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조남수 목사가 쓴 의 기록에 의하면 조목사는 .. 2024. 6. 25.
제주 선교의 첫 열매 홍순흥 장로 이기풍 목사와 홍순흥 장로의 첫 만남은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홍순흥 장로는 이기풍 목사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무엇하러 오신 분이십니까” 그러자 이기풍 목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신약, 구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에 홍순흥 장로는 이렇게 화답한다. “아 약장사시군요 어디다 쓰는 약입니까? 이 우스꽝 스러운 만남이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열매를 맺는 순간이 될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제주는 예로부터 바람, 물, 가뭄으로 오는 재해가 크다고 하여 삼재라 하였고 대문, 도둑, 거지가 없다하여 삼무, 그리고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하여 삼다라고 하였다. 특히 제주사람들은 서로가 삼춘이라고 부르면서 혈연공동체를 이루는 삶을 살았고 그와 더불어 마을 마다 있는 당을 통해 그들만의.. 2024. 6. 16.
하멜 표류기 - 조선 탈출 하멜이 조선에 있었던 13년 6개월 동안 끊임 없이 생각했던 것은 바로 탈출이다. 그는 조선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벨테브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을 떠나 고국인 네덜란드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강했다. 하멜 일행은 먼저 배를 구입하였다. 조선인 선주는 혹시 이들이 도망갈까 하여 주저하였는데 값을 두배로 주겠다는 이야기에 배를 내어 주었다. 하멜 일행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육지 반대방향으로 배를 저었다. 주변에서 다가오는 어부의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하멜 일행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돛을 올렸다. 이들의 탈주뒤 해방 방백 수령에 대한 징계가 있었다. 그 내용은 “헌종개수실록” 7년(1666) 10월 26일(계유)와 “헌종실록” 7년(1666) 12월 13일(기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 2024. 6. 11.
제주 선교의 아버지 이기풍 2 제주에 발을 내딛 이기풍을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그를 박해하며 예수믿으면 모가지가 날라간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불길 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제주를 사랑 하시기로 마음 먹은 것 같다. 박영효 대감은 초기 이기풍의 선교 사역에 큰 힘을 보테 주었다. 그는 제주 유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기풍이 제주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기풍의 놀라운 헌신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제주도에 파송 받은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1908년 독노회 앞에 원입인 9명 주일 출석 20명이라는 선교 결과가 보고 되었다.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결실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기풍이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 이미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가 예수를 영접한.. 2024.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