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이 조선에 있었던 13년 6개월 동안 끊임 없이 생각했던 것은 바로 탈출이다. 그는 조선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벨테브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을 떠나 고국인 네덜란드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강했다.
하멜 일행은 먼저 배를 구입하였다. 조선인 선주는 혹시 이들이 도망갈까 하여 주저하였는데 값을 두배로 주겠다는 이야기에 배를 내어 주었다.
하멜 일행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육지 반대방향으로 배를 저었다. 주변에서 다가오는 어부의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하멜 일행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돛을 올렸다.
이들의 탈주뒤 해방 방백 수령에 대한 징계가 있었다. 그 내용은 “헌종개수실록” 7년(1666) 10월 26일(계유)와 “헌종실록” 7년(1666) 12월 13일(기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을 탈출한 하멜 일행이 도착한 곳은 교토열도였다. 이곳에서 3일간 머무르며 자신들이 나가사키게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 하였다. 다행히 일행은 나가사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동인도 회사에서 출항한 다섯척의 네델란드 배가 정박해 있었다.
이 무렵에 일본은 하멜 일행의 문제를 빌미로 조선과의 무역에서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일본은 특히 난파선에 실려 있던 물품의 소유를 주장함으로써 한때나마 양국 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당시 조선 측의 문헌에는 이 사실이 “현종실록” 및 “현종개수실록” 7년 (1666) 10월 23일(경오)에 잘 나타나 있다.
하멜 일행은 1668년 7월 20일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13년 6개월의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다. 그는 도착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의 드렸다.
우리와 함께 조선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은 호르쿰 출신으로 승선 당시 서기였던 하멜, 데니스, 브리스, 야네, 이보켄, 티에리, 클레르크, 그리고 호드프로이이다. 조선에 남은 사람들의 이름은 라페, 코넬리스, 니콜라스, 얀스, 울테르스, 아렌트스, 보스켓 그리고 유트레히트 이다.
하멜은 일행에서 처져 바타비아에서 1년 쯤 머물다가 1670년 무렵에 호르쿰으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동인도회사로 가 근무하다가 1690년 무렵에 돌아와 1692년 2월 12일에 62세로 사망했다. 그는 미혼으로 삶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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