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실록에 나오는 그리스도인 - 길리시단 (효종실록, 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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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야기

조선왕조 실록에 나오는 그리스도인 - 길리시단 (효종실록, 인조실록)

by beautifultogether 202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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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실록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할까? 그러나 실재 조선왕조실록인 효종실록과 인조실록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리스도인을 길리시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효종실록 11, 효종 486일 무진 2번째기사 1653년 청 순치(順治) 10

 

濟州牧使李元鎭馳啓曰: "有舡一隻, 敗於州南, 閣於海岸, 使大靜縣監權克中判官盧錠, 領兵往視之, 則不知何國人, 而船覆海中, 生存者三十八人, 語音不通, 文字亦異船中多載藥材鹿皮等物, 木香九十四包龍腦四缸鹿皮二萬七千碧眼高鼻, 黃髮短鬚, 或有剪髯留髭者其衣則長及䯗, 而四䙆衿旁袖底, 俱有連紐, 下服則襞積而似裳使解倭語者問之曰: ‘爾是西洋吉利是段者乎?’ 衆皆曰: ‘耶耶指我國而問之, 則云高麗, 指本島而問之, 則云吾叱島, 指中原而問之, 則或稱大明, 或稱大邦, 指西北而問之, 則云韃靼, 指正東而問之, 則云日本, 或云郞可朔其, 仍問其所欲往之地, 則云郞可朔其云" 於是, 朝廷命上送于京師前來南蠻人朴燕者見之曰: "果是蠻人" 遂編之禁旅, 蓋其人善火炮或有以鼻吹簫者, 或有搖足以舞者

 

제주 목사(濟州牧使) 이원진(李元鎭)이 치계(馳啓)하기를,

 

"배 한 척이 고을 남쪽에서 깨져 해안에 닿았기에 대정 현감(大靜縣監) 권극중(權克中)과 판관(判官) 노정(盧錠)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보게 하였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뒤집혀 살아 남은 자는 38인이며 말이 통하지 않고 문자도 다릅니다. 배 안에는 약재(藥材녹비(鹿皮) 따위 물건을 많이 실었는데 목향(木香) 94(), 용뇌(龍腦) 4(), 녹비 27천이었습니다. 파란 눈에 코가 높고 노란 머리에 수염이 짧았는데, 혹 구레나룻은 깎고 콧수염을 남긴 자도 있었습니다. 그 옷은 길어서 넓적다리까지 내려오고 옷자락이 넷으로 갈라졌으며 옷깃 옆과 소매 밑에 다 이어 묶는 끈이 있었으며 바지는 주름이 잡혀 치마 같았습니다. 왜어(倭語)를 아는 자를 시켜 묻기를 너희는 서양의 크리스챤[吉利是段]인가?’ 하니, 다들 ‘야야(耶耶)’ 하였고, 우리 나라를 가리켜 물으니 고려(高麗)라 하고, 본도(本島)를 가리켜 물으니 오질도(吾叱島)라 하고, 중원(中原)을 가리켜 물으니 혹 대명(大明)이라고도 하고 대방(大邦)이라고도 하였으며, 서북(西北)을 가리켜 물으니 달단(韃靼)이라 하고, 정동(正東)을 가리켜 물으니 일본(日本)이라고도 하고 낭가삭기(郞可朔其)097) 라고도 하였는데, 이어서 가려는 곳을 물으니 낭가삭기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서울로 올려보내라고 명하였다. 전에 온 남만인(南蠻人) 박연(朴燕)이라는 자가 보고 과연 만인(蠻人)이다.’ 하였으므로 드디어 금려(禁旅)에 편입하였는데, 대개 그 사람들은 화포(火砲)를 잘 다루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코로 퉁소를 부는 자도 있었고 발을 흔들며 춤추는 자도 있었다.

 

 

인조실록 36, 인조 16313일 병자 1번째기사 1638년 명 숭정(崇禎) 1638년 명 숭정(崇禎) 11

 

丙子/東萊府使鄭良弼馳啓曰: "日本關白家康時, 有南蠻人稱以吉利施端, 來在日本, 只事祝天, 廢絶人事, 惡生喜死, 惑世誣民, 家康捕斬無遺至是島原地小村, 有數三人, 復傳其術, 出入閭巷, 誆誘村民, 遂作亂殺肥後守江戶執政等勦滅之云

 

동래 부사 정양필(鄭良弼)이 치계하였다.

 

"가강(家康)이 일본의 관백이었을 때, 길리시단(吉利施端) 이라고 하는 남만인(南蠻人)들이 일본에 와 살면서 단지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것만 일삼고 인사(人事)는 폐하였으며, 사는 것을 싫어하고 죽는 것을 기뻐하며 혹세 무민하였는데, 가강이 잡아다 남김없이 죽여버렸습니다. 이 때에 이르러 도원(島原) 지방의 조그만 동네에 두서너 사람이 다시 그 술수를 전파하느라 마을을 출입하면서 촌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하더니, 드디어 난을 일으켜 비후수(肥後守)를 죽였습니다. 이에 강호(江戶)의 집정(執政) 등이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

 

1600년대 부터 이미 조선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네덜란드 사람으로 조선에 온 벨테브레(박연)과 하멜은 어쩌면 한국 기독교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참으로 제주는 선교의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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