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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야기73

제주 기독교 순례길 5코스 제주 성내교회 제주 성내교회는 제주의 첫 공교회이며 이기풍 목사에 의해 1908년 설립된 교회이다. 1908년 2월 제주 산지포에 도착한 이기풍은 이미 제주에서 기도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김재원 조봉호등을 만나 제주 최초의 교회인 성내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홍순흥 김행권 등을 전도하여 향교골 중인문 근처에 있는 김행권의 집에서 기도모임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후 1910년 유배중인 박용효대감의 도움으로 삼도리에 있는 옛출신청사(훈련원)을 매입하여 예배를 드렸다. 1915년 조선총독부에 교회 성립 신고를 하고 1917년 김재원 홍순흥을 제주도 최초의 장로로 세움으로써 당회가 구성되어 조직교회가 되었다. 이후 교회의 부흥으로 1923년 반 양옥식으로 교회를 신축하였다. 이후 성내교회는 1941년 "동부.. 2024. 7. 4.
제주 목관아(사적 제380호)와 관덕정(보물 제322호) 제주 바다를 앞에두고 동문로타리에서 서문로타리 중간에는 조신 시대의 제주 목관아가 위치하고 있다. 이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최고 통치 기관이며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행정 기관이다. 최초의 관아는 모두 불타서 소실 되었고 터만 남아 있다가 1991년 부터 발굴 조사와 복원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아지는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1434년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타없어졌지만 안무사 최해산이 바로 재건하였다. 제주 목사의 집무실이었던 홍화각을 비롯해 집성실인 연희각 연희장으로 쓰였던 우연당, 귤림당등의 건물과 부대 시설이 복원 되었다. 목관아에서 직접 제배한 귤이 한양에까지 갔다고 하니 당시 제주 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06년.. 2024. 7. 2.
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2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만세운동은 제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천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나며 조국 광복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구체적인 행동의 시작이 바로 ‘독립희생회’이다. 이곳을 통해 독립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이 모금 운동에는 윤식명 목사 임정찬 목사 등 당시 제주에서 목회하던 3명의 목사가 모두 기꺼이 마음을 합하여 동참하게 되고 이도종과 최정식 김창언 문창래 등의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희생회 제주지회를 결성하여 모금활동을 비밀리에 진행하게 된다. 독립희생회는 4450명의 회원을 갖게 되었고 군자금도 1만원에 달하였다. 이 군자금은 김창류를 통해 상해로 무사히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일은 일본 경찰에 의해 발각되었다. 조봉호를 비롯한 윤식명 김창.. 2024. 6. 28.
4.3 사건과 제주 교회의 첫 순교자 이도종 목사 1945년 해방이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좌우의 이념적 대립은 사회를 극도로 혼란 스럽게 만들었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선거를 앞둔 4월 3일에 제주도에서는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확산되었고 제주도에는 비상경비사령부가 설치되어 진압 및 소탕작전이 이루어졌다. 전쟁과 맞물린 이 사건은 6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제주도민은 피해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고 말았다. 제주 교회가 입은 피해도 사뭇 심각했는데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출신 1호 목사인 이도종 목사가 순교하고 교인들이 실종 및 희생당하였으며 서귀포, 협재, 삼양, 조수교회가 소실되고 교회 사택 및 교인 가옥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조남수 목사가 쓴 의 기록에 의하면 조목사는 .. 2024.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