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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기독교6

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목사 3 삼양교회는 1915년 10월 1일 이기풍 선교사의 전도로 제주시 삼양2동 신평석 씨 댁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듬해 오주병 교우가 초가 3칸을 예배당으로 헌납하였으며 1918년 김창국 목사가 처음으로 부임하여 1922년에 삼양2동 초가 35평의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2년후에 김정복 목사가 부임하였다. 신학교를 휴학한 이도종이 삼양교회 전도사로 부임할 때에는 교역자가 없었던 때였다. 이도종을 열심을 다하여 2년간 200여명의 교우들이 있었던 삼양교회를 섬기며 헌신 하였다. 1926년 신학교로 다시 돌아온 이도종은 졸업을 한학기 남기고 윤식명 목사의 추천으로 김제 서쪽의 월성과 봉월 두 교회를 섬기게 된다. 월성과 봉월은 제주 삼양교회와 달리 교세가 매우 약할 뿐만 아니라 동학난의 영향으로 .. 2024. 6. 22.
이기풍과 함께한 사람들 김행권 박영효 제주에 온 이기풍 목사에게 처음으로 예배처소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김행권이다. 그는 의협심이 많은 사람으로 이기품 목사가 제주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을 때 그를 도와주었던 사람이었다. 니스벨 선고사는 “나의 친구 이기풍을 만나다”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충분한 준비를 한 후 이 목사는 1908년 제주에 도착하여 제주도의 가장 큰 도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서 그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고 심한 박해를 견뎌냈다. 20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그를 죽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구 송문옥을 만들어 주었는데 송문옥을 군중을 진압하고 이 목사를 구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그는 어느 마을에서 전도를 했는데 밤이 되자 아무도 그에게 자기 집에서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그를 밖에서 자야만 했.. 2024. 6. 18.
제주 선교의 첫 열매 홍순흥 장로 이기풍 목사와 홍순흥 장로의 첫 만남은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홍순흥 장로는 이기풍 목사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무엇하러 오신 분이십니까” 그러자 이기풍 목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신약, 구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에 홍순흥 장로는 이렇게 화답한다. “아 약장사시군요 어디다 쓰는 약입니까? 이 우스꽝 스러운 만남이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열매를 맺는 순간이 될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제주는 예로부터 바람, 물, 가뭄으로 오는 재해가 크다고 하여 삼재라 하였고 대문, 도둑, 거지가 없다하여 삼무, 그리고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하여 삼다라고 하였다. 특히 제주사람들은 서로가 삼춘이라고 부르면서 혈연공동체를 이루는 삶을 살았고 그와 더불어 마을 마다 있는 당을 통해 그들만의.. 2024. 6. 16.
제주 선교의 아버지 이기풍 4 1908년부터 1915년까지 7년가 이기풍 목사는 많은 선교의 결실을 거두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그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바로 교회를 세운 것이다. 삼양교회, 모슬포교회, 법환교회, 중문교회, 용수교회, 한림교회, 금성교회, 조천교회, 세화교회, 성읍교회들이 바로 이기풍목사의 영향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지금도 제주 땅에 교회 하나 세우기가 어려운 여건인데 그 당시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이기풍 목사의 초기7년의 사역은 제주 복음의 씨앗을 심는 기간이었다. 그가 건강이 악화되어 1915년에 선교를 잠시 중단 했던 것은 이제 교회가 태동하는 제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1915년 조천교회의 세례와 학습문답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역을 할 .. 2024.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