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역사14 제주 선교의 아버지 이기풍 4 1908년부터 1915년까지 7년가 이기풍 목사는 많은 선교의 결실을 거두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그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바로 교회를 세운 것이다. 삼양교회, 모슬포교회, 법환교회, 중문교회, 용수교회, 한림교회, 금성교회, 조천교회, 세화교회, 성읍교회들이 바로 이기풍목사의 영향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지금도 제주 땅에 교회 하나 세우기가 어려운 여건인데 그 당시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이기풍 목사의 초기7년의 사역은 제주 복음의 씨앗을 심는 기간이었다. 그가 건강이 악화되어 1915년에 선교를 잠시 중단 했던 것은 이제 교회가 태동하는 제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1915년 조천교회의 세례와 학습문답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역을 할 .. 2024. 6. 15. 하멜 표류기 - 조선 탈출 하멜이 조선에 있었던 13년 6개월 동안 끊임 없이 생각했던 것은 바로 탈출이다. 그는 조선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벨테브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을 떠나 고국인 네덜란드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강했다. 하멜 일행은 먼저 배를 구입하였다. 조선인 선주는 혹시 이들이 도망갈까 하여 주저하였는데 값을 두배로 주겠다는 이야기에 배를 내어 주었다. 하멜 일행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육지 반대방향으로 배를 저었다. 주변에서 다가오는 어부의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하멜 일행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돛을 올렸다. 이들의 탈주뒤 해방 방백 수령에 대한 징계가 있었다. 그 내용은 “헌종개수실록” 7년(1666) 10월 26일(계유)와 “헌종실록” 7년(1666) 12월 13일(기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 2024. 6. 11. 하멜 표류기 - 제주표류 1653년 스파르웨르호(Sparrow Hawk)라는 이름의 네덜란드 선박이 대만의 타이완으로부터 나가사키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그 배는 결코 나가사키에 도달 할 수 없었고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1666년까지 그 배와 관련된 어떠한 소식도 받지 못했다. 이후 1668년 로테르담에서 “1653년 타이완에로의 스파르웨호의 불우한 항애에 관한 일지 : 스파르웨르호가 제주도에서 좌초된 이유와 더불어 조선 왕조의 영토, 지방, 도시, 요새에 관한 특별한 묘사”라는 내용의 이야기라 하멜에 의해 발간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멜 표류기”이다. 1653년 1월 10일에 네덜란드를 떠난 배는 6월1일에 되어서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하였다. 이후 7월 16일에 대만에 정박하였고 7월 30일에 나가사키를 향해 다시.. 2024. 6. 11. 제주 초기 기독교 역사 (제주통사) 제주통사라는 책에 보면 제주 기독교 초기 역사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08년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 들어와 선교하기 시작하였지만 제주의 민심은 아직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유는 1901년 일어난 신축교란 일명 이재수의 난의 여파가 아직까지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의 박해로 시작된 이재수의 난은 도민들이 서양 종교를 접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었다. 이기풍 목사는 서울에서 기독교 신자가 된 김재원 홍순흥 김행권등의 도움을 얻어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김행권에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다 초가 두채를 마련하여 10여명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게 되었다. 1910년 삼도리에 있는 옛 출신청사를 사들이고 1915년에 이기풍목사의 명의로 교회 건립 허가 신청을 총독부에 제출하였는데 지금의 성내교.. 2024. 6. 9.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