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통사라는 책에 보면 제주 기독교 초기 역사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08년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 들어와 선교하기 시작하였지만 제주의 민심은 아직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유는 1901년 일어난 신축교란 일명 이재수의 난의 여파가 아직까지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의 박해로 시작된 이재수의 난은 도민들이 서양 종교를 접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었다.
이기풍 목사는 서울에서 기독교 신자가 된 김재원 홍순흥 김행권등의 도움을 얻어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김행권에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다 초가 두채를 마련하여 10여명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게 되었다.
1910년 삼도리에 있는 옛 출신청사를 사들이고 1915년에 이기풍목사의 명의로 교회 건립 허가 신청을 총독부에 제출하였는데 지금의 성내교회이다. 1917년 전남 노회의 허락을 받아 김재원 홍순흥이 처음으로 장로가 되었다.
이후 헌신적인 선교활동으로 제주의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천교회, 정의교회, 수원교회들이 설립되었고 조창식 좌징수 최대진 윤식명 이재순 노창수 등이 포교하였다.
이후 금성교회 삼양교회 내도리교회 고산교회 중문교회 두모교회 법환교회 용수교회 세화교회 도두교회 조수교회 김녕교회 대정교회 성산교회 서귀교회 남원교회 협재교회 성읍교회 신풍교회 신도교회 한림교회 추자상도교회등이 세워져 제주도 전지역에서 포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전도자로는 김창국 임정찬 김영식 이기풍 최희준 정태인 강문호 김정복 김일석 오주병 고영흥 정순모 오공화 김윤숙 이근호 이도종 박유덕 박창욱 이경필 허성재 김계홍 김기평 윤명식 문명옥 김수현등이 있었다.
또 교회에서는 문맹퇴치 교육사업에도 힘을 썼다. 성안 교회의 영흥 야간학교 모슬포교회의 광선학교 협재 교회의 영재 야간부등이 대표적이다. 1924년 교회를 중심으로 한 제주 중앙유치원을 개설하였는데 제주도 최초의 유치원이다.
이후 제주의 교회는 1930년 전남노회에서 떨어져 나와 제주 노회가 조직되었다. 일본 군국주의 팽창으로 신사 참배와 궁성 요배등을 강요받게 되자 이를 거절하다가 옥고를 치른 목회자들도 많았다.
일제의 무력 시위 앞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제주 교회가 자리를 잡고 예배 드리며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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