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37 제주역사 : 삼별초와 탐라 학정과 수탈이 계속되었으면서도 탐라인들은 나라사랑과 공명심을 잃지 않았다. 사회정의 정신은 탐라인의 성품을 가름하는 중요한 특징이었다. 삼별초는 탐라인의 이 같은 사회정의 정신과 잘 어울렸다. 삼별초는 본래 개인적인 보호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제주와 말 고려시대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권신들은 자신들의 신변 보호와 사회적 질서 안정을 위해 힘세고 용감한 자를 특별히 골라 야간 경비를 서게 하였다. 이들을 야별초라 불렸다. 야별초는 정권 유지에 해가 되는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이용하기 위한 목적도 농후했다. 1170년 무신 정중부의 난 이후 무신들 간의 정변이 반복되면서 사회적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 처음 최충한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된 야별초는 그으 아들 최우에 와서 세력이 커지면서 야별초를 .. 2019. 12. 18. 제주역사 : 조선시대 제주 1392년 7월 고려가 멸망하고 이태조가 조선을 개국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제주의 정치 환경은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제주의 관직에 변화가 있었고, 그동안 형식적이지만 유지되어 오던 '성주', '왕자'가 없어짐으로 탐라국이 종식을 고하게 된 것이다. 제주의 통치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체계화되었다. 1397년 태조 6년에 만호가 목사 및 첨절제사를 겸하였고 1400년 정종 2년에 판관으로 교수를 겸하였으며 1401년에는 안무사를 제주에 다시 설치하여 목사를 겸하게 되었다. 1402년에는 성주를 좌도지관으로 삼고, 왕자는 우도지관으로 개칭함으로 성주와 왕자로 이어져 온 탐라국은 종식을 고하게 되었다. 1443년 세종 25년에 안무사로 목사를 겸하고 감목사를 두었으며, 1445년 세종 27년에는 좌우도지관.. 2019. 12. 17. 제주 : 제주어 제주어, 제주방언, 제주말, 어느 게 맞을까? 제주어라고 부를 때 다소 독립적인 언어의 특질을 말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라고 부를 때를 가리키는 그런 언어이다. 그와 달리 방언은 사투리를 떠올리면 한국어에서 말하는 표준어의 상대 개념이다. 이때 방언은 지역에서 쓰이는 말을 의미한다. 그럼 제주말은? 제주어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제주방언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섭섭해하는 이들은 ‘제주말’, 아니 ‘제줏말’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듣기 거북한 방언이라는 단어를 빼고, 대신 한국어 버금가는 듯한 제주어에 대한 느낌을 다소 완화시키고 쓰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왜 전국 각지에서 쓰이는 사투리 가운데 제주방언에만 유독 언어개념인 ‘어(語)’를 집어넣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전라도나 경상도 말을 쓰는 이들.. 2019. 12. 16. 제주 여인의 표상 : 해녀 해녀는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의 정신이고, 제주의 표상입니다. 해녀가 없는 제주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19세기까지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뿌리는 육지의 농부와 해안가의 어부였습니다. 제주에서는 농부, 어부 외에 해녀와 목자가 더 있습니다. 제주에선 목자를 ‘테우리’라고 하고 해녀는 ‘ᄌᆞᆷ녀’ 또는 ‘ᄌᆞᆷ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해녀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학자 중에는 해녀는 일제가 업신여겨 만든 말이라고 해서 잠녀와 잠수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녀나 잠수의 어감이 별로 좋지 않은데다 해녀라는 말이 이미 익어 있기 때문에 통상 해녀로 부릅니다. "잠수 할 때 수자는 물 수(水) 자가 아니라 형수님 할 때의 수(嫂)자입니다. 존칭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제주인들이 아저씨 아주머.. 2019. 12. 15. 이전 1 2 3 4 5 6 7 8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