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07 하멜 표류기 - 조선 탈출 하멜이 조선에 있었던 13년 6개월 동안 끊임 없이 생각했던 것은 바로 탈출이다. 그는 조선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벨테브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을 떠나 고국인 네덜란드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강했다. 하멜 일행은 먼저 배를 구입하였다. 조선인 선주는 혹시 이들이 도망갈까 하여 주저하였는데 값을 두배로 주겠다는 이야기에 배를 내어 주었다. 하멜 일행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육지 반대방향으로 배를 저었다. 주변에서 다가오는 어부의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하멜 일행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돛을 올렸다. 이들의 탈주뒤 해방 방백 수령에 대한 징계가 있었다. 그 내용은 “헌종개수실록” 7년(1666) 10월 26일(계유)와 “헌종실록” 7년(1666) 12월 13일(기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 2024. 6. 11. 하멜 표류기 - 제주표류 1653년 스파르웨르호(Sparrow Hawk)라는 이름의 네덜란드 선박이 대만의 타이완으로부터 나가사키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그 배는 결코 나가사키에 도달 할 수 없었고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1666년까지 그 배와 관련된 어떠한 소식도 받지 못했다. 이후 1668년 로테르담에서 “1653년 타이완에로의 스파르웨호의 불우한 항애에 관한 일지 : 스파르웨르호가 제주도에서 좌초된 이유와 더불어 조선 왕조의 영토, 지방, 도시, 요새에 관한 특별한 묘사”라는 내용의 이야기라 하멜에 의해 발간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멜 표류기”이다. 1653년 1월 10일에 네덜란드를 떠난 배는 6월1일에 되어서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하였다. 이후 7월 16일에 대만에 정박하였고 7월 30일에 나가사키를 향해 다시.. 2024. 6. 11. 제주 선교의 아버지 이기풍 3 이기풍 목사와 제주교회 제주 교회가 어떤 형태로 설립 되었는지 또는 언제 설립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된다. 다만 초기 제주 교회의 형성에 이기풍 목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금성리교회, 조천리교회, 성내교회가 초기 제주도에 선교를 통해 설립된 대표적인 교회라 할 수 있다. 이 교회들이 설립될 때 이기풍 목사가 직간접으로 교회설립에 참여했고 금성리교회와 성내교회 설립과정에서 조봉호 김재원의 전도가 중요한 몫을 했으며, 이 교회들이 세월질 때 함께한 사람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초기 제주 교회가 설립될 때 천아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선광이 성내교회 성립과정에서 처음부터 같이 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여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제주에.. 2024. 6. 10. 제주 선교의 아버지 이기풍 2 제주에 발을 내딛 이기풍을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그를 박해하며 예수믿으면 모가지가 날라간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불길 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제주를 사랑 하시기로 마음 먹은 것 같다. 박영효 대감은 초기 이기풍의 선교 사역에 큰 힘을 보테 주었다. 그는 제주 유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기풍이 제주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기풍의 놀라운 헌신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제주도에 파송 받은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1908년 독노회 앞에 원입인 9명 주일 출석 20명이라는 선교 결과가 보고 되었다.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결실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기풍이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 이미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가 예수를 영접한.. 2024. 6. 10. 이전 1 2 3 4 5 6 7 8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