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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과 제주 교회의 첫 순교자 이도종 목사 1945년 해방이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좌우의 이념적 대립은 사회를 극도로 혼란 스럽게 만들었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선거를 앞둔 4월 3일에 제주도에서는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확산되었고 제주도에는 비상경비사령부가 설치되어 진압 및 소탕작전이 이루어졌다. 전쟁과 맞물린 이 사건은 6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제주도민은 피해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고 말았다. 제주 교회가 입은 피해도 사뭇 심각했는데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출신 1호 목사인 이도종 목사가 순교하고 교인들이 실종 및 희생당하였으며 서귀포, 협재, 삼양, 조수교회가 소실되고 교회 사택 및 교인 가옥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조남수 목사가 쓴 의 기록에 의하면 조목사는 .. 2024. 6. 25.
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목사 3 삼양교회는 1915년 10월 1일 이기풍 선교사의 전도로 제주시 삼양2동 신평석 씨 댁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듬해 오주병 교우가 초가 3칸을 예배당으로 헌납하였으며 1918년 김창국 목사가 처음으로 부임하여 1922년에 삼양2동 초가 35평의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2년후에 김정복 목사가 부임하였다. 신학교를 휴학한 이도종이 삼양교회 전도사로 부임할 때에는 교역자가 없었던 때였다. 이도종을 열심을 다하여 2년간 200여명의 교우들이 있었던 삼양교회를 섬기며 헌신 하였다. 1926년 신학교로 다시 돌아온 이도종은 졸업을 한학기 남기고 윤식명 목사의 추천으로 김제 서쪽의 월성과 봉월 두 교회를 섬기게 된다. 월성과 봉월은 제주 삼양교회와 달리 교세가 매우 약할 뿐만 아니라 동학난의 영향으로 .. 2024. 6. 22.
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2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만세운동은 제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천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나며 조국 광복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구체적인 행동의 시작이 바로 ‘독립희생회’이다. 이곳을 통해 독립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이 모금 운동에는 윤식명 목사 임정찬 목사 등 당시 제주에서 목회하던 3명의 목사가 모두 기꺼이 마음을 합하여 동참하게 되고 이도종과 최정식 김창언 문창래 등의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희생회 제주지회를 결성하여 모금활동을 비밀리에 진행하게 된다. 독립희생회는 4450명의 회원을 갖게 되었고 군자금도 1만원에 달하였다. 이 군자금은 김창류를 통해 상해로 무사히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일은 일본 경찰에 의해 발각되었다. 조봉호를 비롯한 윤식명 김창.. 2024. 6. 21.
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목사 1 순교자 이도종 목사 (1892~1948)  이도종 목사는 1892년 9월 13일 아버지 이덕련과 어머니 박열선 사이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족보상엔느 도훈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는지 길 도(道), 신을 모시는 집이란 종(宗)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버지 이덕련은 지금의 어촌 계장이나 이장의 역할을 하는 경민장으로 일하며 치수장을 만들어 금성, 귀덕, 곽지 등 마을 간에 시끄러운 어장 분쟁을 놀라운 기지로 수습하였다. 그는 자녀들에 대한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다. 장남인 도종은 어릴 적부터 천자문에서 소학, 대학, 논어, 중용에 이르기까지 한학 공부에도 관심이 많았다. 1907년 조봉호를 통해 전해 들은 복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덕련 일가에게는 한 줄기 빛이었다. 이를 .. 2024.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