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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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야기

제주의 순교자 이도종 목사 1

by beautifultogether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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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이도종 목사 (1892~1948)

 

이도종 목사는 1892913일 아버지 이덕련과 어머니 박열선 사이에서 5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족보상엔느 도훈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는지 길 도(), 신을 모시는 집이란 종()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버지 이덕련은 지금의 어촌 계장이나 이장의 역할을 하는 경민장으로 일하며 치수장을 만들어 금성, 귀덕, 곽지 등 마을 간에 시끄러운 어장 분쟁을 놀라운 기지로 수습하였다.

그는 자녀들에 대한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다. 장남인 도종은 어릴 적부터 천자문에서 소학, 대학, 논어, 중용에 이르기까지 한학 공부에도 관심이 많았다.

1907년 조봉호를 통해 전해 들은 복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덕련 일가에게는 한 줄기 빛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친척들과 이도종 가족 등 몇사람이 양석봉의 집에 모여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이날이 1907310일 주일이다. 지금도 그 양석봉의 집터에 제주 기독교 순례길 표지석이 놓여 있다.

1928년 조선야소교장로회 총회가 발행한 조선야소교장로회 사기, “ 265~267쪽에 있는 금성교회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 금성리 교회가 성립하다. 독노회 설립당시에 파송한 전도목사 이기풍과 매서인 김재원 등의 전도로 인하여 조봉호 이도종 김진실 조운길 양석봉 이효민 이자민 김도전 김유승 좌징수 이의종이 귀도하여 조봉호의 집에서 모여 기도하다가 이덕련가를 예배처소로 작정하니라.“

 

여기에 기록된 이효민, 이자민, 이의종은 모두 이도종의 형제 자매들이다. 또한 김도전은 이도종의 아내이다.

이덕련은 사재를 털어 예배 처소를 마련하였다. 이때가 1930년이다. 그리고 신작로에 <상해양행>을 열어 서양 물품을 팔았는데 거기에 성경 찬송가 외에 각종 기독서적도 구비하였다고 한다.

이도종이 18세일 때 그는 김도전과 결혼한다. 결혼 후 그가 가장 고민하였던 것은 평양 유학이다. 이 문제를 놓고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 이덕련은 자녀들의 장래 일에 누구보다 관심이 크고 배워야 사람답게 살 수 있고 나라와 민족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들 도종을 유학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양에서 기독학교인 경신학교에서 수학한 조봉호의 영향과 이기풍 선교사의 기독교 선진교육에 대한 강한 권유도 이도종의 유학에 힘을 실어 주었다.

평양 숭실학당에 입학한 이도종은 그곳에서 성경과 천로역정 기독교교리 어문학 조선어문법 영어 수학 자연과학 물리 생물학 생리학 위생학 지리 천문학 만국역사 동양사 서양사 등을 공부하였고 학업능력도 뛰어났다.

그러던 중 한 해만 더하면 졸업할 수 있는 3년째 접어든 1913년 동생 이의종의 오산학교 입학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일하던 <상해양행>에서 일을 돕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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