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선교4 제주 선교의 아버지 이기풍 4 1908년부터 1915년까지 7년가 이기풍 목사는 많은 선교의 결실을 거두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그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바로 교회를 세운 것이다. 삼양교회, 모슬포교회, 법환교회, 중문교회, 용수교회, 한림교회, 금성교회, 조천교회, 세화교회, 성읍교회들이 바로 이기풍목사의 영향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지금도 제주 땅에 교회 하나 세우기가 어려운 여건인데 그 당시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이기풍 목사의 초기7년의 사역은 제주 복음의 씨앗을 심는 기간이었다. 그가 건강이 악화되어 1915년에 선교를 잠시 중단 했던 것은 이제 교회가 태동하는 제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1915년 조천교회의 세례와 학습문답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역을 할 .. 2024. 6. 15.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의 제주 선교 시작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를 통한 제주선교의 기틀 평양대부흥운동은 제주 선교를 위한 동력을 제공하는데 충분했다. 물론 평양대부흥운동이 호남으로 확산 되었을때 그 영향이 설령 제주도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제주선교를 위한 꿈과 비전을 발견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이어 1907년에 결성된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는 제주선교를 위한 제도적 틀을 제공해 주었다. 19097년 9월 평양에서 조직된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1회 독노회에서는 제주선교를 공식적으로 결정하였다. 길선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제주에 선교사를 보내어 전도를 시작한 일 선교사의 월은과 전도 용비는 각 교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연보하게 부탁한 일 연보할 대는 각 교회에서 연보할 편지 보는 주일에 광고하고 그 다음 주일에 연보할 일 제주선.. 2024. 6. 6. 칼 귀츨라프의 꿈 칼 귀츨라프의 꿈 1832년 8월 17일 칼 귀츨라프가 쓴 일기는 하나님이 계획한 제주 선교의 꿈이 눈을 뜬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일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각기 나름대로 형상을 가진 많은 섬들을 통과했다. 가장 남쪽에 있는 섬 제주도 (Quelpoert, lat, 32’ 51’, long 126’23)는 매력적인 곳이다. 잘 개간되었고 너무도 편리한 곳에 위치해 있어 한 공장을 이곳에 세울 수 있었다면 우리는 가장 편하게 일본, 한국, 만주 그리고 중국과 무역거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실현 불가능 하다면 이런 섬을 선교기지로 삼을 수 없을까? 한국 정부가 멀리 떨어진 그섬을 통제해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여기 거주 하는 선교사는 뉴질랜드에 있는 선교사들.. 2024. 6. 5. 벨테브레의 제주표착 벨테브레의 조선표착 한국에 처음 온 서양인은 누구인가? 한국에 처음 발을 내딘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때로는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627년 네덜란드 사람 얀 야너스 벨테브레(Jan J. Weltevree 한국명 박연)가 그 일행 3명과 함께 전라도 해안에 표착한 것이 한국에 온 최초의 서양인이다. 벨테브레는 일본으로 교역차 항해하다가 폭풍을 만나서 경주 앞바다까지 밀려와 거기서 난파되었고 한국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키가 큰 사람들로 대포도 만들 줄 알았다. 「인조실록」에 보면 무과에 박연이 뽑혔다는 기록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군대에 편입되어 병자호란에 참전하게 되었고, 다른 일행은 다 죽고 벨테브레만 살아 남았다... 2024. 6. 4. 이전 1 다음